Weekend Everyday, 後노동자 시대 프롤로그

Weekend Everyday, 後노동자 시대 프롤로그

2018년 여름, 111년만의 폭염도 시간의 흐름 속에 기세가 꺾이고 있다.

은근슬쩍 해는 짧아져 일곱시만 되면 어둑어둑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부는 바람이 제법 선선한게 괜히 섭섭..

 

뭘 해도 좋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퇴사 후 여름.

온종일 집에서 사무실에서 에어컨에 절어서 미세먼지보다 갑갑한 성냥갑 속 공기를 마시며 보내는 여름이 아닌

온몸으로 뻘뻘 햇볕 아래 얼마만에 온전하게 느껴본 여름이었는지.. 여름이 가는 순간순간이 서운했다.

곧 지나가버릴 시간이지만 아쉬운 마음에 천천히 가라고 잡아당겨보는 여름 끝자락.

 

회사를 그만둔 지 한달이 지났다.

회사를 그만뒀다고 해서 나의 모든 번뇌가 사라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나는 사소한 고민들가령 점심은 뭘 먹을지 커피를 마실지 차를 마실지 뭘 입을 지 차를 가지고 나갈지 버스를 탈지,

앞으로 뭘 하면 좋을지

을 친구삼아 하루를 보내지만

 

자고 싶은 시간에 자고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간혹 먹고 싶지 않을 때는 지금이 아니면 안되기때문에 강박으로 먹지 않아도 괜찮은

불규칙함이 주는 여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며 만족스럽다.

 

어떤 날은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기도 하고

어떤 날은 작정한 것도 아닌데 하루에 책을 네권씩 읽어내려가기도 했다.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리스트를 빼곡히 적고

바삐 움직여 쫙쫙 긋는 쾌감으로 하루하루를 잘 살아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끼던 나인데

그렇게 소진되고 가고 있던 나의 영혼이 여백과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가고 있는 것처럼.

 

10년 전 2008년 취업을 준비할 때의 나는 자소서에 적기도 했던 것처럼.. 나의 쓰임을 찾고 싶었다.

국민학교 6, 중학교 3, 고등학교 3년 총 12년의 의무교육 과정에

어학연수 1년 포함 총 7년간 대학생활을 마친 나는 무려 19년간의 재화, 시간, 기대, 지식(?)의 집성체였다.

푹 찌르면 곧 톡 터져나올 것 같은 INPUT 포화상태랄까.

돌파구 혹은 순환처가 필요했었다.

 

나와 필요가 맞는 두 곳의 일터에서 꼭 10년간 나를 소비했다.

때마다 적당한 수준의 돈과 직함으로 보상을 받았고,  52시간 규제에 환호해야할만큼 착취를 당하지도 않았다.

세상에 어떻게 저런 생명체가 존재를 할 수 있지 싶은 인간들과 마주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1시간이 멀다하고 메신저로 삶을 나누던 아쉬운 사람들이 더 많았다.

 

그렇게 좋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최대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버티며

이 시간은 어쩐지 놀면서 돈을 버는 것 같은 호쾌함이 있었다.

주어진 일에는 또 그럭저럭 딱 기대에 부응할 만큼만 해내며 적당히 잘 헤쳐나가는 내가 멋지게 느껴지고 좋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회사라는 곳이 주는 안락함에 내 인생을적당히 때우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놀면서 돈을 번다고 기뻐했지만 책상머리에 앉아 적당히 밖에 신날 수는 없었던 그 시간도 내 인생이었고

더 잘 더 빨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일을 해야하는 구조 속에서 눈치를 보며 적당적당히 때우던 대부분의 순간들도 내 인생이었다.

 

휴가가 시작되면 다시 없을 것처럼 일분일초가 흘러가는 것에 전전긍긍 조바심을 내고 아까워하다

마지막 날이면 어김없이 잠 못이루고 

월요일이 되면 이번 주는 어떻게 버텨야하나를 걱정하며.. 나는 내 인생의 시간들을 편애하기 시작했다.

 

일상은 휴가를 떠나기 위해 버텨야하는

주말은 주중에 피로하거나 아프지 않게 쉬어가야하는 수단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기에 나에게 약속된 것은 10-15년간 더 받을 수 있는 월급

그것도 운이 좋고 내가 병들지 않아야 가능한

뿐 이었고, 그 액수는 미래의 안정을 약속해주진 못했다.

 

다시 한 번,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때로는 선택을 받는 것보다 스스로 선택해야하는 일이 어려울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그 선택이 무언가를 내려놓는 선택일 때 더 그런 것 같다.

 

마음의 결정을 하고나서도 10년의 관성은 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그래서 역설적이지만 하루 바삐 회사를 그만두었다.

출근하기 싫어 울상을 짓고 집에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나 기쁜데도

그만두어도 된다고하니 망설이는 내 모습이 어릴 때 동화에서 봤던 서서히 덥혀지는 물 속에 익숙해져

앗뜨거 앗뜨거를 반복 하면서도 튀어나오지 못하던 개구리꼴 같아서..

 

 

매일매일 가슴 떨리고 신나는 하루하루를 보낼 수는 없더라도

마음이 끌리는대로 나를 내버려두고 천천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할 때 충만감을 느끼는지

어떤 인생을 살 것인지 자유롭게 나의 의지로써 삶의 방식을 찾아가봐야겠다.

 

나는 벌써  월화수목금토일 나의 인생 속 시간들을 편애없이 좋아하게 되었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들이야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다시 살아도 이 정도면 충분히 행복하겠다 싶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갓 시작된 새로울 날들,

그래, 이렇게도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