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더웠던 작년 여름.
애증의 가방 사업을 정리하면서 MJ와 나는 둘만의 가족 회의를 열었다. (첫번째 가족회의는 아마 내가 회사를 그만 둔다고 이야기했을때쯤 이었던것 같다). 당시 우리는 금전적으로 매우 힘든 상황이었고 개인적으로도 나는 사업정리로, MJ는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상황이었다. 가족회의를 마치고 우리는 다음의 계획을 짰다.
1. 2018년 한국을 뜬다.
2. 원하는 곳에서 살고, 원하는 일을 하며 산다.
먼저 1번,
나는 한국이 싫지 않다.
한국은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가장 안전한 나라이며, 유행에 민감한 한국인의 특성상 트렌디한 곳들이 너무나도 많다. 커피애호가인 나로써는 스타벅스와 아티제를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고, 제휴할인을 이용하면 2000원대에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또 많은 식당, 디저트가게, 미용실 등에서는 매우 상향평준화된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도 얼마의 팁을 놔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최근에 부쩍 나빠진 공기에 질을 제외하면 여전히 한국은 좋은 나라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한국을 뜨려고 하는 이유는
2번,
우리는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요즘 유행하는 “한국이 싫어 헬조선 탈출!!” 같은 느낌이 아니다. 단지 세계는 넓고, 가고 싶은 곳은 많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시선에서 지금도 우리는 해외를 많이 가는 편이다. 특히 한동안 내가 여행사의 PM을 맡게 되면서 출장갈 기회가 많이 주어졌었다. 그래서 최근 몇 년 새에는 해외를 갈 수 있는 기회가 더 잦았었다.
그런데 자주 간다 해봐야 1년에 3~4번 정도이다. 일수로 따지면 30~50일 정도? 그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또 며칠씩 있다온다 한들 기본적으로 늦잠 자고 밥먹고 카페에 앉아 한 나절 이야기 하다보면 하루는 금방 간다. 그래서 도시를 떠날때마다 우리는 앵무새처럼 같은 말을 한다.
“한 3일만 더 있다 가면 좋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지금 우리가 돈을 버는 유일한 낙이 새로운 곳에 가서 밥먹고 커피 마시고 이야기 하다오는것이라면 그냥 거기서 살면 되잖아?”
생각해보면 1년에 3~4번을 제외한 우리가 소비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원치 않는 시간’ 이었다.
매일 뺑뺑이를 치면서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라고 말하며 휴가를 기다리는 군인들의 생활과 다름이 없었다. 우리는 이미 창살없는 감옥에 갇혀있었다. 나는 이미 회사를 그만두었기 때문에 제약이 덜했지만 회사생활 10년차인 MJ같은 경우에는 훨씬 심했다.
우리는 휴가와 공휴일을 제외한 75% 이상의 시간을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에서
잠깐씩 주어지는 일탈을 꿈꾸며 살아가고 있었다.
실제로 2017년에는 스트레스를 너무 받았던지 MJ에게는 여러가지 몸의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안색도 눈에 보이게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더 늦기 전에 나는 결정을 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안정감’이라는 단어가 무엇이 중요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원치 않는 생활 330일 + 원하는 생활 30일) x 10년
= 원치 않는 생활 3,300일 + 원하는 생활 300일이 된다.
10년 동안 지금 같은 삶을 산다면 10년이란 세월동안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1년이 채 안된다. 그런데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면서 1년을 살면 원하는 생활을 365일 하면서 산것이 된다.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생활을 10년간 해서 원하는 생활 300일을 채우는것보다 1년간 우리가 원하는 생활을 한 날이 많을것이란 이야기다. 난 오래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그동안의 삶의 질이 어떻게 채워지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향은 결정되었다.
하지만 방향으로 나아갈 방법이 필요했다.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만 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작년 여름, 나는 MJ에게 선언을 했다. “노트북만 있으면 내가 어디에 있던간에 한 달에 최소 $4,000 달러의 수입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2018년 여름까지 어떻게 하든 구축해 놓겠다”고 했다. $4,000달러는 우리가 세계 90% 이상의 지역에서 마음껏 살 수 있는 상징적인 숫자였다. 사전 조사를 해본 결과 우리가 평소 좋아하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의 발리 같은 곳에서 살 경우 수영장이 있는 원베드가 한 달 50-60만원이면 살 수 있는것으로 나왔다.

이런 느낌의 집이 월 50만원이다.
거기에 한 달 식비와 커피값 100만원을 잡고 취미생활과 핸드폰 요금, 유틸리티 등에 또 다른 100만원을 잡아봤다. 나머지 보험료와 비상금을 잡고 계산을 해보니 $4,000 정도면 뉴욕이나 런던 같은 살인적 물가를 자랑하는 도시만 아니면 왠만한 나라에서는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생각됐다.
분명 누군가는 ‘말이 쉽지‘ 라고 생각할 것이고 누군가는 ‘이제 철 좀 들어‘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대부분의 이론과 가설들이 ceteris paribus(모든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는 유토피아 속에서만 완벽하게 이뤄지듯이 내가 상상하는 완벽한 생활은 내 상상속의 유토피아속에서만 존재할 수도 있다. 막상 나가서 살아봤는데 여행과는 달리 살아보는것은 별로 일수도 있다. 외국에서 이방인이 겪는 서러움을 겪을 수도 있다.
그런데 어차피 어디서 살던 완벽한 생활은 없다.
바꿔 말해 내가 지금 생활을 계속 유지한다고 해도 세상일은 100% 만만히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것이다. 처음부터 안될거라고 생각하면 될 일도 안된다. 난 이번에도 내가 나아갈길이 최선이라고 믿고 실행할 뿐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선언을 해서 입밖으로 나의 생각을 꺼집어 내는 행위는 생각속에만 있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다.
작년 여름, 아내에게만 했던 선언을 이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려한다.
2018년. 나는 한국을 뜬다.
A life spent making mistakes is not only more honorable,
but more useful than a life spent doing nothing.실수하며 보낸 인생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보낸 인생보다 훨씬 존경스러울 뿐 아니라 훨씬 더 유용하다.